1. 손끝으로 읽는 책갈피
책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책갈피를 찾는다. 대부분은 종이, 금속, 천 등으로 만들어진 단조로운 도구다. 그러나 이번 경험은 조금 다르다. 산책 도중 우연히 발견한 밤나무 껍질을 책갈피로 만들어 사용해보며, 그 촉감과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기록해본다. 나무 껍질이라는 재료는 의외로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소재다. 형태는 자유롭고, 굴곡은 일정치 않으며, 질감도 마치 시간의 단면을 손끝으로 만지는 듯 독특하다. 이 작은 조각 하나가 어떻게 촉각의 언어로 기능하는지를 느껴보고자 했다. 손으로 종이를 넘기는 감각 사이에, 나무 껍질이 끼어든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 이상이었다. 그것은 책이라는 인지 행위에 물성을 더하고, 기억을 환기시키는 감각적 장치였다.

2. 껍질의 결이 말해주는 나무의 시간
밤나무 껍질은 한눈에 보기에도 조밀한 주름과 미세한 균열이 엉켜 있는 모양새다. 손바닥에 올려두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표면의 ‘이중 감각’이다. 바깥은 거칠지만 안쪽은 의외로 매끄럽고 유연하다. 특히 가운데 부분은 코르크처럼 푹신하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마른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진다. 이 조각은 물리적 변형 없이도 손가락의 위치에 따라 다른 촉감을 전달했다. 마치 나무가 시간에 따라 다르게 자라듯, 그 껍질도 시간에 따라 여러 층의 감각을 저장하고 있는 듯했다. 손끝이 껍질을 따라 움직일 때, 어느 순간 그것은 감각을 넘어선 내러티브가 되었다. 이 나무가 서 있었던 계절, 받았던 비와 바람, 그리고 마침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여정이 촉감 하나로 전달되었다.
3. 촉감이 만든 감정의 여운
책을 읽다가 껍질책갈피에 손이 닿을 때마다, 뭔가 다른 리듬이 책 속으로 들어왔다. 종이의 부드러움과 껍질의 거침이 교차할 때, 그 책은 더 이상 활자만 있는 도구가 아니었다. 어느 장면에서는 껍질의 결이 마치 등장인물의 감정처럼 느껴졌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스토리의 리듬을 손끝에서 조율하는 악보처럼 작용했다. 그 촉감은 나무에 대한 추억과도 연결되었다. 유년 시절 밤송이를 줍던 기억, 가을 저녁의 냄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소리 등… 단순한 물리적 접촉이 감정의 회로를 건드리는 방식은 매우 직접적이고, 동시에 치유적이었다. 그것은 손끝에서 시작되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감각의 여운이었다.
4. 자연을 책 속으로 데려오는 방법
밤나무 껍질책갈피는 단순히 ‘특이한 책갈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한 조각을 일상에 들여오는 작은 의식이었다. 우리는 종종 자연을 멀리 떨어진 풍경으로만 인식하지만, 이렇게 작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감각에 끌어들이는 것이 훨씬 깊은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이 책갈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조금씩 바래고, 끝이 닳아가겠지만, 그 변화조차 하나의 시간성으로 기억될 것이다. 손끝에 남는 껍질의 감각은 이제 내가 읽는 모든 책에 함께 스며든다. 감각은 디지털화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마지막 보루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도, 자신만의 자연의 조각을 책 속에 담아보기를 바란다. 손끝 하나로 자연과 연결될 수 있는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