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각의 출입구, 손바닥으로 읽는 풍경
우리의 손바닥은 세상과 직접 맞닿는 가장 민감한 감각 기관 중 하나다. 우리는 무언가를 집고, 만지고, 눌러보며 그것의 성질과 온도, 존재감을 인식한다. 이번 체험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돌담 위에 조용히 앉아 손바닥을 눕혀 감각만으로 돌의 표면과 주변 공간을 관찰하는 기록이다. 이 돌담은 과거 농가와 마을을 구분짓던 경계였지만, 지금은 수풀이 무성해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장소다. ‘앉아 있는 것’과 ‘누워 있는 것’의 중간 형태로 손바닥을 바닥에 펼치고,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감각만으로 돌담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감각 훈련 이상의 몰입 경험이었다. 익숙한 손이라는 도구를 통해, 낯설고 거친 세계가 스르륵 펼쳐지기 시작했다.

2. 차갑고 둔탁한 질감의 층, 돌의 이야기
처음 돌담에 손을 얹었을 때 느껴진 것은 온도였다. 10월 중순의 늦가을 바람 속에 노출된 돌은 금속처럼 차가웠고, 온도보다 더 선명하게 감각에 남은 것은 표면의 불균형이었다. 모서리는 날카롭고 중심부는 매끈했으며, 이 돌이 긴 시간 동안 비바람을 맞아온 흔적이 피부로 전해졌다. 살짝 힘을 주어 눌렀을 때 느껴지는 미세한 흔들림은 이 돌이 완전히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줬다. 손바닥 중심부터 손끝까지 이어지는 근육이 표면의 굴곡에 맞춰 움직일 때마다, 돌담은 저마다 다른 질감의 레이어를 보여주었다. 단단한 부분, 가루처럼 부서지는 표면, 이끼가 자란 부드러운 공간까지… 손바닥은 그 돌 하나를 ‘지형도’처럼 읽어내고 있었다.
3. 촉감이 마음을 흔드는 순간
돌담을 통해 느껴지는 촉감은 단지 손의 자극을 넘어 감정까지도 자극했다. 차가운 표면이 손끝을 타고 올라올 때마다 잠시 머물렀던 겨울의 기억이 떠올랐고, 거친 질감은 어린 시절 뒷산에서 놀던 때의 장면을 소환했다. 촉감이 가진 심리적 연결성은 예상보다 강렬했다. 이 경험은 눈을 감은 채 진행되었기에 더욱 순수했다. 시각의 정보를 차단하자 손바닥은 훨씬 민감해졌고, 마치 감각의 해상도가 올라간 듯 세세한 결이 더 잘 느껴졌다. 돌 사이의 미세한 균열, 틈에 박힌 풀잎, 흙먼지의 잔여물까지 손끝에 그대로 전해졌다. 동시에 손바닥에 전달되는 자극이 미세하게 심장 박동과 동기화되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이것은 마치 몸 전체가 돌담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신비로운 감각이었다.
4. 손의 기억으로 남는 풍경
이 체험을 마치고 나서도, 손바닥은 한동안 돌의 감각을 잊지 못했다. 일상에서 키보드나 스마트폰을 만질 때조차, 잠시 돌의 거친 면이 떠올랐다. 우리는 시각에 의존해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감정이 남는 순간은 촉각으로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돌담 위에 앉아 손바닥을 눕히고 풍경을 느끼는 이 단순한 행위는, 바쁜 일상 속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게 해주었다. 촉감은 잊고 살던 기억을 불러오고, 공간의 밀도와 시간의 질감을 우리 안에 새겨넣는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물과 표면을 손바닥으로 기록하는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만진다’는 행위가 단순한 동작이 아닌 하나의 감각적 언어임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